윤영한 2022. 6. 14. 08:51

 

86년 여름,
신동엽 시인의 미망인 인병선 여사님이 거주하시는 서울 혜화동 자택을 친구와 둘이서 방문한 적이 있다.

다과를 나누면서 인병선 여사님은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얘기를 한걸로 기억한다. 지금 살아계시는지 근황이 궁금하다.

그래서인지, 현실에 부딪힘이 있을 때는 민족 시인 신동엽 시인이 생각난다.

"4월은 갈아엎는 달
곰나루에서 피 터진 사월의 함성.."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따라 미사리를 지나 팔당댐 인근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왔다.

잊을 건 잊고 더 큰 미래의 것을 찾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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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갈아엎는 달
              詩 / 신동엽

내 고향은
강 언덕에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

지금도
흰 물 내려다보이는 언덕
무너진 토방가선
시퍼런 풀줄기 우그려넣고 있을
아, 죄 없이 눈만 큰 어린 것들.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산천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4월이 오면
내 가슴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
우리네 조국에도
어느 머언 心底, 분명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미치고 싶었다.
4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의 함성,
광화문서 목 터진 4월의 승리여.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의 不夜城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漢江沿岸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일어서는 달.